이러저러 바쁜 농사일들을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포도알 솎기와 봉지 씌우기가 진행될 다음 주까지는 숨 가쁘게 바쁜 나날이 이어질 것 같군요.
하루 일과를 끝내고 밤하늘 별이나 구경할 겸 밖으로 나와 보니 뭔가 반짝반짝 빛나며 밭 주위를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반딧불이 1년 만에 다시 돌아온 겁니다. 제 눈에는 날고 있는 것이 아니라 넘실대는 파도를 타며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 모습이 사뭇 여유 있고 느긋했습니다. 저 반딧불은 어쩌면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원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못 다한 삶과 평화로운 삶에 대한 한이 사무쳐 이렇게 하늘과 땅 사이에서 평온의 춤사위를 펼치고 있는 듯 했습니다.  

대립과 갈등. 자연 속에서도 그것은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인간만이 잘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떠한 미물, 풀 한 포기라도 생명은 능동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보다 나은 삶을 열망하게 되고 안락과 행복을 희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양분이 있는 흙으로 풀뿌리는 뻗어가고, 따뜻하고 풍성한 먹이를 찾아 철새는 수만 리 장천을 날아갑니다. 새는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먹이를 빼앗겨 슬피 울기도 할 것이며, 나비는 노니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하여 꿀을 찾아 헤매기도 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동종 사이, 이종 사이의 대립과 갈등은 어쩌면 자연변화의 본질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찌됐든 그들의 갈등은 시간이 지나면 순리적으로 해결이 됩니다. 먹이사슬의 큰 틀 내에서 해결이 되는 거겠죠. 때로는 우리들 농부와 같은 해결사가 나서서 물리적으로 처리할 때도 있곤 하지만, 자연 스스로가 냉혹한 도태의 칼자루를 휘두름으로써 상황을 결론짓고는 합니다.

그러나 인간사회에서는 좀 다릅니다. 얽히고설킨 이해관계의 갈등은 기득권을 지키려는 탐욕에서 유발되었기에 좀처럼 진정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것이 지나칠 경우 폭력과 전쟁으로 발전하여 아무 상관이 없는 억울한 중생들을 처참한 죽음으로 몰고 가기도 합니다. 저는 그것을 노근리 사건에서 재확인하게 됩니다.

노근리 사건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영동군의 황간면 노근리에서 벌어졌던 비극적인 일입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약 1개월 후 미군은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오던 북한군의 기세에 눌려 후퇴를 거듭하게 됩니다. 미군은 후퇴 과정에서 있을지도 모를 기습을 염려합니다. 하여 그들은 1950년 7월25일 영동읍에 이르렀을 때 인근 주민 수백여 명을 모아 놓고 피난을 시켜주겠다며 남쪽으로 향하게 합니다.

7월26일 피난민들이 노근리 도로 변의 경부선 철로 위에 올라섰을 때 미군은 그들의 몸과 짐을 검사한 다음 무장하지 않았음을 확인하고도 미 공군 무스탕기를 무전으로 불러 기총소사를 해댑니다. 그것이 1차 학살이었죠. 이어 살아남은 자들이 경부선 철로 밑 쌍굴 터널 아래로 들어가자 2차, 3차 학살이 계속됩니다.

터널 양쪽에 기관총을 걸어놓고 터널을 향해 수십 명을 쏘아 죽여 놓고는, 잠시 쉬었다가 또 기관총을 쏘아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학살 놀음’을 미군은 3박4일 동안 저질렀다고 합니다. 그때 숨진 사람의 수는 2백여명에 이르렀는데, 그들 중 80% 이상이 노약자와 부녀자들이었습니다. 지금도 노근리 쌍굴터널에는 당시의 총알 흔적들이 남아 있습니다.

왜 미군은 비무장 피난민들을 그렇게 무참하게 살해했을까요? 제 생각에는 단순히 북한군의 초기 기세에 눌린 미군이 애꿎은 민간인들에게 화풀이를 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탐욕과 두려움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탐욕으로 가득한 자는 주변이 온통 자신의 기득권에 해가 될 두려움의 대상으로 보이게 됩니다. 한마디로 눈이 뒤집히는 거죠. 미국은 한국전쟁을 통해 동북아시아에 대한 정치적 지배력을 확고히 다졌습니다.

또 ‘세계의 파수꾼’으로 등극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욕심을 채울 수지맞는 장사를 한 셈입니다. 노근리 사건은 결국 탐욕에 눈이 먼 미군이 민간인들을 학살함으로써 두려움의 대상을 없애고자 한 결과입니다. 

평화는 상대방을 인정하고 서로의 생명을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일입니다. 내 것만이 아니라 타인의 것도 소중하다는 것을 인식하는 일입니다. 지금 우리사회는 한국전쟁 때 못지않게 사회 전 부문에 걸쳐서 대립과 갈등이 커지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평화와 상생의 목소리도 더불어 커질 때가 됐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한없이 기득권에 집착하고 갈등관계를 오히려 조장해서 이익을 챙기려는 열등한 세력들은 평화와 상생을 바라는 우월한 세력에 의해 자연도태 되어야 할 것입니다. 

어느새 반딧불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조용히 방문을 열고 그들이 어서 방안으로 들어오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 편집국에서 - 젊은 농부 김철의 농촌연가는 격주로 실릴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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