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금돈·돼지문화원 장성훈 대표

   돼지와 36년 동고동락‘돼지 아버지’
   육종·개량부터 생산·가공까지 만능
   체험·관광 아우른‘돼지문화원’진화

   종돈 개량 통해 독립브랜드육 개발
‘치악산금돈’인지도, 다양한 가공품도
   축산 주제 6차 산업화 모델로 우뚝

 

 

 돼지 아버지. 돼지와 36년 이상을 같이했으니 돼지 아빠, 돼지 아버지라 부를 만하다. 농업회사 금돈과 돼지문화원 대표인 장성훈 명인은 ‘돼지 아버지’로 통한다. 장성훈 대표는 쓰러졌다 일어나면 몸집이 더 커지는 오뚝이 같다. 국제구제금융(IMF) 시대가 닥쳐 크게 넘어졌고, 잘 가꾸던 농장이 도로에 수용돼 옮겨야만 했고, 구제역 광풍에 휩쓸려 나락에 빠지기도 했다. 장 대표는 그때마다 훌훌 털고 일어나 더 큰 미래를 향해 달렸다. 종돈 개량과 육종연구, 돼지유전자센터, 브랜드 고기 개발·유통, 육가공과 곰탕 제조, 관광체험과 축산종합 문화공간, 비대면 마케팅 등등. 위기마다 이겨내고 더 커졌다. 다재다능한 명장이다.

 

 


위기마다 배수진, 더 투자해 성공의 길로


고교와 대학 모두 축산계열이었으니 장성훈 대표의 축산입문은 40년을 훌쩍 넘긴다. 돼지와 본격 연을 맺은 것은 1985년 대학 졸업 후 ㈜다비육종에 입사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10여 년 직장생활을 마무리하고 1997년 자기 농장을 시작했다. 경기도 안성이었다. 출발과 동시에 국내 기업들이 줄도산하고 국제구제금융 체제에 접어들었다. 농장은 망했다.


“경영기법이랄까, 투자기법이랄까, 밑바닥일 때 배수의 진을 치고 더 크게 투자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걸 그때 깨우쳤습니다. 돼지가격은 폭락하고 사룟값은 폭등하니 속수무책일 수밖에요. 폭락세가 조금 진정됐을 때 투자를 유치해 폐업 농장을 더 장만하고 돼지를 더 들였습니다.”


적잖은 빚을 졌지만, 기술에 자신이 있었고 성공하리란 확신도 있었다. 어미돼지만 있는 폐업 직전 농장을 사들여 단기간에 규모를 두 배, 세 배 늘리기도 했고 인공수정센터를 운영하며 전공을 살려 유전자 연구와 종돈 개량에도 힘을 쏟았다.


그렇게 위기를 넘어 안착할 만하니 농장 일부가 고속도로 나들목에 수용됐다는 통보가 왔다. 시공사와 도로공사 등을 찾아다니며 최후 공사까지 농장을 운영할 수 있게 배려받았고 차근차근 강원도 원주로 옮겼다. 고향 양구는 수도권과 너무 멀고 외진 곳이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원주로 온전히 옮긴 후 칠팔 년, 많은 것을 이뤘다. 인공수정센터, 육종과 개량은 정상궤도에 올랐고 GGP(Great Grand Parent) 농장, GP(Grand Parent) 농장에 브랜드 육을 개발하고 생산 규모도 꽤 늘렸다. 다양한 가공품도 안정적인 생산체계에 근접했고, 축산을 주제로 한 종합문화공간으로 ‘돼지문화원’ 건립, 조성도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구제역에 공들인 농장 ‘그라운드 제로’


전국 곳곳에 산발적으로 구제역이 발발해 철통 방역에 임했으나 장 대표의 농장에도 구제역 폭탄이 터졌다. 2011년, 생때같은 돼지 2만2천여 마리를 묻어야 했다. 말 그대로 그라운드 제로였다. 거액의 보상금이 나왔다지만 밀린 사룟값에 대출금 등 빚잔치를 벌이고 수익이 전혀 없는 상태이다 보니 수십억 빚이 남았다. 직원들도 하나둘 떠나보내야만 했다.


높은 수준의 종돈 개량과 고급육 생산, 깨끗한 축산농장 지정, 신지식농업인, 미국식품의약국(FDA) 인증, 국제표준화기구(ISO) 인증, 강원도 인증 농수특산품 등 단절되지 않도록 계승하면서 새롭게 시작해야 했다.


넘어지면 얼른 일어나 더 크게 꿈을 꾸고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몇 번의 경험치가 장 대표를 다부지게 만들었다. 이번에도 과감하고 공격적인 투자로 사업을 확대했다. 펀딩과 사료회사가 뒷받침했다. 농장은 농장대로 복구해가고 가공산업도 다양한 제품 개발에 힘입어 확장해갔다. 돼지문화원 완공과 함께 관광체험, 식당운영 등 서비스업 등 6차 융복합 산업화도 길을 찾아갔다.


돼지문화원은 축산을 주제로 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주목받았다. 중심은 물론 돼지다. 밥, 김치와 함께 우리 국민의 주식이라고 할 만큼 인기 높은 돼지고기 먹을거리, 돼지를 보고 안아볼 수 있는 문화체험공간, 돼지 달리기 경주, 소시지 만들기 체험, 온 가족이 함께할 펜션 등 6차 산업의 ‘성지’가 됐다.


지난 2014년 4월 16일, 안산 단원고 학생 등 300여 명이 진도 앞바다에서 스러진 가슴 아픈 세월호 사건의 여파는 돼지문화원에까지 미쳤다. 안전사고를 우려한 각급 학교와 어린이집 등이 한동안 수학여행과 체험 활동계획을 전면 백지화하면서 돼지문화원은 위기에 처했다.

 

아들·딸 다 농장 참여, 생산·마케팅 담당


게다가 나름의 호황을 누리던 한돈산업이 2017년경부터 불황의 조짐을 보였다. 차곡차곡 수익을 내며 빚을 갚아가던 장 대표에게 다시 엄혹한 시기가 닥쳐오고 있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유행과 전 지구를 휘감은 펜데믹의 엄습이 이어졌다. 돼지문화원의 적자 폭이 커져만 갔다.


“구제역 당시 어쩔 수 없이 떠나간 직원들은 그렇다 해도 지난해에는 적잖은 직원을 구조조정으로 떠나보내야만 했습니다. 농장운영을 시작한 지 23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죠. 그렇게 해서 적자 폭을 줄이고, 체험 같은 대면 서비스도 확 줄이고, 비대면 온라인 판매로 마케팅을 집중하면서 최근 상황이 많이 나아졌습니다.”


‘치악산금돈’은 브랜드 인지도가 꽤 높다. 자체 종돈장과 인공수정센터 운영을 통해 품종개량이 꾸준히 이뤄졌고, 그 노력의 산물이 ‘치악산금돈’이다. 사육 기간은 180일 이상, 자체 개발한 첨가제 없는 전용 사료는 30일 이상 먹여 키워야 이 고급브랜드육이 생산된다. 인지도만큼 마니아층도 두껍다.


장 대표는 아들과 딸이 모두 축산계열 대학과 대학원을 나오고 농장운영에 참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아들은 농장에서 돼지 생산이 주력이고, 딸은 기획 홍보와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다. 여러 번 파도를 헤쳐온 장 대표는 물결 잔잔한 곳에 다다르자 외부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신지식 농업인으로서 사회활동도 하고 전국종돈경영인회 회장을 지내기도 한 장 대표는 최근까지 한돈자조금관리위원회 대의원회 의장을 역임했다. 돼지 아버지라고 농장에만 붙박이로 있지는 않았다. 돼지문화원 설립도 축산업을 매개로 도시와 농촌의 자연스런 소통과 교류 문화가 가능할 것이란 기대를 담고 있다.


“돼지와 평생을 같이한 사람으로서 ‘돼지 아버지’라는 자부심이 큽니다. 한편에선 기후변화니 축산냄새니 하면서 한돈산업을 오해하고 배척하는 세태가 있어 답답하죠. 돼지문화원이 농촌과 도시 간, 축산농가와 소비자 사이에서 가교역할을 할 수 있길 바랍니다. 제가 사회활동에 참여하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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